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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라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라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라(還他本分). 이 말이 어찌 문장에만 해당되는 것이리요. 일체의

가지가지 만사가 모두 그렇지요. 서화담(徐花潭, 화담은 徐敬德의 호)선생이 출타했다가

집을 잃어버리고 길가에서 울고 섰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

 

"너는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저는 다섯 살 때 눈이 멀어서 지금 20년이나 되었답니다. 오늘 아침 나절에 밖으로

나왔다가 홀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기에 기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길은

여러 갈래요, 대문들이 서로 어슷비슷 같아 저희 집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래 지금

울고 있습지요."

 

선생은

"네게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깨우쳐주겠다.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곧 너의 집이

있을 것이다."

라고 일러주었답니다.

 

그래서 소경은 다시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리며 익은 걸음걸이로 걸어서 곧장 집에

돌아갈 수 있었더랍니다.

 

이는 다른 까닭이 아닙니다. 색깔과 모양에 정신이 뒤죽박죽 바뀌고, 슬픔과 기쁨에

마음이 쓰여서 이것이 곧 망상이 된 것입니다. 지팡이를 두드리며 익숙한 걸음걸이로

걷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의 본분을 지키는 이치요, 집으로 돌아가는

증인(證印)입니다.

 

(答蒼厓 之二)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박지원지음/김혈조옮김/학고재] 15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본관은 반남, 자는 미중, 중미,

호는 연암(燕巖)이고 지돈령부사 박필균의 손자이자 박사유의 아들이다. 관직은

음사로 1786년에 선공감 감역, 한성부판관, 안의현감, 면천군수, 양양부사를

역임하고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열하일기’,‘과농소초’, ’과정록’,

’연암집’,’한민명전의’등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최고의 지성이자 백탑파의 스승으로서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서상수, 유금 등과 함께 학문을 논하였다. 연암은 진하사절의 정사인 삼종형 금성위

박명원의 자제군관으로 북경과 열하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열하일기’를 썼다.

 

‘열하일기’를 통하여 북학사상을 적극 받아들여 청의 신문물을 배우고 익혀 낙후된

조선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대부들은 명에 대한 의리론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소중화주의에 의거한 봉건주의 사고에 젖어 있었다. 정조의 등장으로 홍국영

정권을 잡자 벽파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가해지자 신변의 위협의 느끼고 연암협으로

은거하게 된다.

 

  연암의 산문은 연암 특유의 작품이 많다. 상기의 ‘창애에게 답한 두번째 편지’도

인생에 대한 심오하고 깊은 뜻이 있는 작품이다. 옮긴이 김혈조선생의 서문에서

“책 이름으로 잡은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라는 말도 사실은 연암의

산문 중에서 따온 표현이다. 눈을 떠 앞을 볼 수 있게 된 소경에게 눈을 도로 감으라,

그러면 곧 너의 집을 찾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설적인 말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눈이 떠진 소경 앞에 놓인 우리의 현실은 온통 왜곡되고 허위가 가득 차 있어, 평소

자신이 다니던 집조차 찾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곧 목전의 현실과 우리의 눈이 도리어

올바른 현실인식에 방해가 된 것이다. 차라리 눈을 다시 감고 마음속으로 길을 찾을 때

바른 길이 보이리라는 의미일 것이다.”라는 해설이 정말 마음에 와 닿는다.

 

특히 요즈음과 같이 우리나라의 어려운 정치경제 사정을 표현한 것과 같다. 이 난세를

극복하고 경제적으로 빈부의 차이가 줄고 소시민이나 힘 없는 자가 잘 살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연암이 말하고자 하는것은 조선시대나 작금의 세상이나 동일하다. 눈으로

보이는 것을 보이는 데로 판단하지 말고 따뜻한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깊은

통찰력으로 올바르게 보고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연암집 제 4>(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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