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牛馬처럼 걷는 전북 여행

(전주) 한벽당(寒碧堂)과 월당 최담 유허비((月塘 崔霮遺墟碑)

 

언제 : 2021년 1월 13일 수요일 

어디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2

 

 

아주 오래전 얘기로,

1966년 12월 순천에서 기차를 타고 이곳을 지났던 기억이 아슴푸레하다.

지금은 기찻길이 없어져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기는 어렵지만 학창 시절 서울 유학할 때 

전주역과 신리역 그리고 관촌역 사이 조그만 터널이 두세 개 있었던 기억이 맞다면

틀림없이 한벽굴일 것이다.

 

한벽당(寒碧堂)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월당(月塘) 최담(崔霮)이 태종 4년(1404)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승암산 기슭 절벽을 깎아 세운 최담의 별장으로  한벽청연(寒碧晴讌)이라 하여 전주 8경의 하나로 꼽던 곳으로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건평은 7.8평이다.

 

누각 아래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데,

바위에 부딪쳐 흰 옥처럼 흩어지는 물이 시리도록 차다 하여 〈한벽당〉이란 이름을 붙였다.

호남의 명승 한벽당에는 시인 묵객들이 쉴 새 없이 찾아와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으며,

길 가던 나그네도 이곳에서 쉬어가곤 했다. 

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의 유형 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전주는 우리나라에서 옛 건물들이 많은 곳 중의 한 곳인데

한벽당을 찾아가던 길에 오목대와 이목대를 지나며 본 전주향교와 은행나무가 옛것임을 볼 수 있다.

오목대와 이목대 사이는 큰 도로가 새로 생겨 육교를 통해 오목대에서 이목대를 갈 수 있고,

그리고 그대로는 전주 향교 뒤에 있는데,

시간이야 단축되고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오목대와 이목대 그리고 전주 향교 주변의 옛 모습들이

사라져 씁쓸한 맛이 가시지 않는다.

 

 

 

 

 

 

 

한벽당에서 본 전경

이곳 역시 전경이 수려하여 조선 태종 때 최담이 이곳에 한벽당을 지었을 터인데,

사진에서 보듯

한벽당과 10m도 떨어져 있지 않게 큰 도로를 건설하여 오가는 차 매연에 이제는 이곳은 결코 편안히 쉴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한벽당 앞을 흐르는 전주천 -

 

 

 

 

 

 

 

 

 

 

 

 

오목대에서 한벽당을 찾아가는 길은 

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전주천이 나오는데, 전주천을 건너는 다리 아래 통로를 지나면

한벽당 계단이 불쑥 나타난다.

큰 도로와 최소한 50m라도 떨어졌다면 좋았을 것을.......  

 

 

 

 

 

 

 

 

 

 

 

 

 

 

 

한벽당 옆에는 터널이 보인다.

1966년 내가 중 3학년 때 기차를 타고 이곳을 지났던 기억이 아슴푸레하다.

왜냐하면

차창으로 옛 건물 즉 한벽당을 본 듯하다.

 

한벽당은 일제에 의해 덜컹거리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면

이제는 우리에 의해 매연에 시달리고 있다.

 

 

 

 

 

월당 최담 유허비((月塘 崔霮遺墟碑)

한벽당 아래 한벽굴을 빠져 나와 이목대로 향하는 길 옆에 비각이 있다.

 

이 비는 순조27년(1827년) 최담의 후손인 최덕지(崔德之)의 부탁을 받아

은진(恩津) 송치규(宋穉圭)가 글을 짓고 썼으며,  전주부 남문밖 금산의 남쪽 옥류동에 있는 월당 최담의 유허 근처에

세워졌다.

  비문은 유명 조선국통정대부 호조참의 집현전직제학 월당 최공유허비

(有明朝鮮國通政大夫 戶曹參議 集賢殿直提學 月塘 崔公遺墟碑)

  비문에 따르면 최담은 고려 충목왕 2년(1346년)에 태어나 세종 11년(1434년)에 사망하였다.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호조참의와 집현전 직제학까지 올랐다고 한다